2025 벙커페어 리뷰 - 공공형 아트페어의 현장 실험
공공형 아트페어의 현장 실험, 도시와 예술의 새로운 균형 모색
한국의 문화,예술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시선은 여전히 서울로 향합니다.
전시장, 페어, 미술관, 그리고 담론의 중심까지 대부분이 수도권 한 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 생태계는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주변의 존재로 완성됩니다.
지속 가능한 문화도시는 예술의 ‘소비지’가 아니라, ‘생산지’를 확장할 때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2025년 8월, 부천의 복합문화예술공간 아트벙커 B39에서 다섯 번째 《벙커페어》가 개최되었습니다.
벙커페어는 2019년 ‘부평·부천 아트페어’로 시작된 흐름이 발전한 결과로, 지역 기반 공공형 아트페어의 모델을 구체화하기 위한 실험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올해 행사는 나인앤드가 총괄을 맡아, 도시 재생 공간을 무대로 한 예술 플랫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공간: 산업시설의 잔여에서 문화 인프라로
이번 행사의 무대가 된 아트벙커 B39는 1990년대 중반 준공된 부천 삼정동 소각장이 그 기원입니다. 하루 약 200톤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던 이 시설은 환경 문제와 주민 갈등으로 인해 2010년경 가동이 중단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유휴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면서 리노베이션을 거쳐 2018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B39’라는 이름은 지하 깊이 39미터를 뜻하며, 두꺼운 콘크리트 벽체와 산업 설비가 그대로 남은 내부는 예술이 완성된 형태보다 ‘과정과 실험’으로 드러나는 장소적 특성을 지닙니다.
전시,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지만, 산업 잔재의 물성을 보존한 구조 덕분에 예술이 도시의 산업적 기억과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올해 벙커페어는 이 장소의 물리적 특성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기획의 핵심 전제로 삼았습니다. 공간의 거칠음과 제약을 회피하지 않고, 그 제약을 전시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기획 방향: 공공형 아트페어의 구조 실험
2025 벙커페어는 ‘공공형 아트페어’의 운영 구조를 한층 구체화한 해였습니다.
상업적 거래 중심의 민간 아트페어와 달리, 작가·시민·기관이 함께 개입하는 협력 구조를 기반으로 한 공공형 모델을 실험했습니다.
올해는 총 51명의 작가가 참여했으며, 공모를 통해 선발된 지역 작가군과 외부 초청 작가의 프로젝트가 병행되었습니다. 지역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업관에 대한 조망과 함께 초청전을 통해 공간을 확장적으로 해석한 퍼포먼스와 사운드 작업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윤제호 작가의 레이저·사운드 퍼포먼스는 벙커 내부 전체를 하나의 도구처럼 활용하며, ‘예술 매체로서의 공간'을 증명한 상징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부천 지역 작가와 미술계의 성장 가능성
올해 벙커페어는 단순히 전시의 성과를 넘어, 부천 지역 예술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공모 참여 작가 중 상당수가 부천 및 경기권 기반의 신진 작가로, 이들이 공공형 페어를 통해 자신들의 작품을 시장과 제도권 관계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실질적 경로를 확보했습니다.
이를 통해 부천이 단순한 ‘전시 개최 도시’를 넘어, 창작자 기반의 예술 생산 도시로서의 위상을 구축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지역 작가들의 활동이 타 지역 미술인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향후 경기 서부권의 미술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메인스트림과의 연결
나인앤드는 벙커페어의 영향력을 지역 단위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 국내 메인스트림 미술계와의 교류를 적극 시도했습니다.
전 키아프(KIAF) 디렉터 및 주요 미술 언론인, 기관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공공형 아트페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공유했고, 난트매거진의 기고로 메인스트림에 벙커페어의 존재를 알릴 기회를 도모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홍보 차원을 넘어, 공공형 아트페어가 동시대 미술 담론의 장으로 편입될 수 있는 구조적 연결을 마련하는 목적을 둡니다.
이를 통해 벙커페어는 지역 기반 행사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한국형 공공 아트페어의 모델로서 외부 미술계와의 소통 기반을 확장했습니다.
결과와 방향성
2025 벙커페어는 전년 대비 약 15%의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성과 평가는 단순한 판매 실적이 아닌, 참여 규모·프로그램 만족도·재참여 의사율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행사 운영 과정에서 확인된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결과와 성과
1.공간 활용의 완성도
벙커의 물리적 제약을 회피하지 않고, 전시 구조 안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공간 자체가 전시의 일부로 작동하며 현장의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2.콘텐츠 구성의 균형
신진 작가 중심 구성이지만, 실험성과 시민 접근성을 함께 고려했습니다.
전시·퍼포먼스·토크의 비중을 조정하여 예술성과 참여성을 동시에 확보했습니다.
3.공공형 운영모델의 지속 가능성 검증
기관 주도형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획사가 기획과 운영 전반을 총괄함으로써 공공사업의 행정적 구조를 보완하는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향후 과제와 제언
1.작가군 확장과 교류의 구조화
지역 중심을 넘어 전국 단위, 나아가 국제 연계 프로그램으로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2.비평 및 담론 형성 장치 강화
전시 소개를 넘어, 비평가와 연구자의 개입이 가능한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이는 공공사업의 기록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장치가 될 것입니다.
3.지속적 운영 체계 구축
행사 종료 이후에도 작가 데이터베이스, 피드백 리포트, 아카이브 시스템을 정례화하여
지역 예술 생태계 안에서 순환 가능한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2025 벙커페어는 공공의 지원, 민간의 기획, 작가의 실험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도시형 예술 플랫폼의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예술을 일회성 행사로 소비하지 않고, 도시 구조 안에서 재배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공공사업이 여전히 ‘행정 중심 실행’에 머물러 있는 현실 속에서, 이번 벙커페어는 기획사가 어떻게 공공의 언어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실질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글 | 이재훈 (나인앤드)
기획 | 나인앤드
장소 | 아트벙커 B39 (부천)
주최 | 부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