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아르코데이 - 한국 동시대 예술의 ‘긴 꼬리’를 따라서

“긴 꼬리”라는 질문: 중심과 주변을 다시 묻는 일

‘The Long Tail(긴 꼬리)’은 경제학에서 유래한 개념입니다.
파레토의 법칙이 말하는 ‘상위 20%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불균형의 원리를 뒤집어,
다양한 소규모 참여자들의 누적된 영향력이 오히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통찰로 발전했습니다.

《2025 아르코데이》는 바로 이 개념을 예술 생태의 언어로 옮겨온 실험입니다.
예술이 중심 제도나 시장의 구조에 종속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창작자와 기획자, 기관들이 예술 생태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구조라는 인식에서의 접근을 제시합니다.

《2025 아르코데이》는 공공이 그 ‘긴 꼬리’를 재현하는 자리였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행사 전반의 철학은 “대다수의 예술적 실천을 공공의 무대 위로 옮긴다”에 있었습니다. 나인앤드는 총괄 기획 및 운영자로서, 이 주제를 개념이 아닌 실제 구조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제 확장: 공공이 예술 생태를 설계하는 방식


‘긴 꼬리’는 단순히 젊은 작가들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구호가 아닙니다. 이는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구조적 제안입니다.
상위 몇몇 제도와 시장 중심의 작동에서 벗어나, 수많은 창작자들이 만들어내는 ‘다층적 생태의 실체’를 공공의 장에서 보여주는 실험입니다.

권태현 큐레이터를 필두로 나인앤드는 이를 “과정의 전시화”로 접근했습니다. 완성된 결과물 대신, 예술이 생산되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제시했습니다. 예술이 ‘결과’가 아니라 ‘시스템’이며, 공공이 그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기획적 제시입니다.

결국 이번 아르코데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지원자’에서 ‘공동 설계자’로 변화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공공이 예술을 제도 밖의 현장으로 끌어올 때, 그곳에서 비로소 새로운 언어가 탄생한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보여줍니다.


프로그램의 구조: 세 개의 언어, 하나의 흐름


2025 아르코데이는 세 개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습니다.
① 아티스트 라운지 : 콘택트 피드
② 아티스트 프레젠테이션
③ 네트워킹파티

세가지 프로그램은 ‘연구–발화–교류’라는 세 단계의 순환 구조를 이루며 연결됩니다.

<아티스트 라운지 : 콘택트 피드>는 아르코미술관 1층 ‘공간열림’에 조성된 청년 예술가 프로모션 라운지는 ‘청년예술가도약지원’ 사업 참여작가 17인의 기록과 흔적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전시는 단순히 완성작을 나열하는 형식이 아닌, 작가의 ‘과정’을 전시의 주제로 삼은 실험적 모델이었습니다. 김그림, 김수화, 유미루, 윤혜정, Kaliens(박민정·안예윤) 등 참여 작가들은 작업의 흔적, 영상 기록, 오브제, 게임, 만질 수 있는 기록물 등을 통해 ‘긴 꼬리’라는 키워드를 다감각적으로 풀어냈습니다. 관객은 완성된 작품을 감상하는 대신, 예술이 생성되는 과정에 동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는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예술적 구조를 열람하는 탐구자로 전환됩니다.

<아티스트 프레젠테이션>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진행된 10명의 작가의 무대 발표 프로그램입니다.
무대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시각예술이 새로운 언어를 얻는 실험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퍼포먼스, 렉처, 사운드, 조명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하며 새로운 형태의 예술 전달 매개를 제시합니다.김상하의 OHP 퍼포먼스, 홍은주의 인형극, 서민우의 사운드 퍼포먼스, 장영해의 스크린 골프 연출 등 각 작품은 무대기술과 개념미술이 교차하는 실험이었습니다. 특히 황예지의 〈나는 사진하는 여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페미니즘적 시선과 사진 행위의 재구성을 통해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습니다

<네트워킹 파티 - ‘캐주얼한 네트워커를 위한 캐주얼한 산책’>는 로스트에어(Lost Air)의 연출로 진행된 참여형 퍼포먼스 이벤트입니다. ‘캐주얼한 네트워커를 위한 캐주얼한 산책’이라는 제목처럼, 관객이 직접 예술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관계를 맺는 구조였습니다. 모바일 룰북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킹 스코어’ 시스템, DJ 에어베어의 디제잉과 퍼포머 ‘계단맨’의 개입, 그리고 ‘전부치기 이벤트’ 등 공공 예술행사에서 보기 드문 ‘참여-놀이-예술’의 접점을 만들었습니다. 관객은 퍼포먼스와 식음, 대화가 뒤섞인 현장 속에서 이 프로그램은 예술과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 동시에, 공공행사가 단순한 교류를 넘어 ‘예술적 행위’이자 ‘확장 활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공간의 의미: 아르코만이 가능한 제도적 구조


올해의 작가 프레젠테이션에는 김상하, 김진주, 박정연, 유승아, 홍은주, 황예지, 장영해, 서민우, 박아름빛, 원정백화점 등 총 10명의 작가가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동시대 미술을 움직이는 세대의 최전선을 나타냅니다.

본 프로젝트에서 프레젠테이션들의 공통점은 ‘형식’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전시장이라는 정적인 프레임을 벗어나, 예술을 ‘과정’과 ‘시간’ 속에서 실험했습니다. 서민우의 퍼포먼스는 극장의 조명과 음향 장치를 악기로 변환시켜, 기계의 구조적 리듬을 사운드로 전환하는 순간을 보여주었습니다. 장영해는 낮의 빛, 과일의 향, 미묘한 색의 움직임처럼 평범한 감각적 단서들을 조형적 사건으로 바꾸어냈습니다. 작업은 마치 현실의 틈새에서 감각이 재조합되는 실험처럼,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를 다시 낯설게 만드는 힘을 가집니다.

또한 박아름빛은 텍스트와 목소리를 결합한 렉처 퍼포먼스로 서사적 언어와 시각적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탐색했습니다. 작가는 말하기의 행위를 하나의 조형 행위로 전환하며, 관객이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공명’하게 만드는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예술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하지 않고, ‘지속되는 사건’으로 제안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2025 아르코데이는 동시대, 세대의 언어가 공공이자 제도적 무대 위에서 선보여진 사례가 되며, 이는 단순히 신진 작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넘어, 한국 예술의 세대 전환이 실질적으로 감지되는 장이 됩니다.


오거나이징 향 프로젝트 플래닝


권태현 큐레이터, 무대감독 아파랏어스(Apparatus), 파티기획팀 로스트에어(Lost Air) 등 각기 다른 전문 그룹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복합 구조 속에서
나인앤드는 각 요소가 충돌하지 않도록 ‘호흡’을 맞추는 중심점으로 역할했습니다.

담론의 설계, 창작자의 최적의 표현 환경 구축, 방문객의 경험설계까지 이러한 조율은 오거나이징이라는 단어로 요약됩니다.
오거나이징은 단순히 일정을 관리하거나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아르코데이처럼 예술적, 제도적, 기술적 언어가 한 무대에서 공존하는 상황에서 오거나이징은 하나의 ‘기획적 연출’로 기능합니다. 나인앤드는 이 지점에서 단순한 대행사가 아닌, 프로젝트 전체의 리듬과 감각을 조율하는 총괄 감독자로 작동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시장과 제도의 경계: 공공이 시장을 읽는 방식

2025 아르코데이는 서울의 주요 미술 행사가 집중된 9월 키아프(KIAF)와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열리는 시기에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정상의 병치가 아니라, 대신 시장이 형성하는 동선과 흐름, 그 안에서 공공의 위치를 새롭게 설정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공공이 단순히 ‘지원자’로 머무르던 과거 모델을 넘어, 스스로를 ‘조율자(Organizer)’로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즉, 공공이 시장을 통제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의 언어를 읽어내고 새로운 균형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나인앤드는 이 구조 안에서 시장과 제도, 예술과 행정의 리듬을 읽어내고, 그 차이를 ‘연결’로 바꾸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성과: 공공의 실험으로서의 완성도


2025 아르코데이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나열이 아니라 “청년예술가-공공-시장”의 연계를 유기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시도한 행사였습니다.

‘청년예술가 프로모션 라운지’가 창작의 현재를, ‘예술가 프레젠테이션’이 발화의 장을, ‘네트워킹 파티’가 사회적 관계망을 상징하며, 나인앤드의 오거나이징 역량에 대한 도출이 가능했습니다. 공공기관과의 협업 구조 안에서도 예술적 밀도를 잃지 않고, 행정과 미학, 구조와 감각을 하나의 방향으로 엮어낸 본 사례를 통해 향후 기획자의 공공예술 기획으로 주목할 형태를 제시합니다


글 | 이재훈 (나인앤드)
기획 | 나인앤드
장소 |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주최 | 아르코미술관
NINEAND

나인앤드는 미술기획을 기반으로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해온 아트컴퍼니 입니다. 아트 프로젝트, 전시기획, 컨설팅까지 예술과 관련된 전 영역의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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