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시대 사용 방법
HERA - C.CREW 기획 인터뷰
숨 쉴 틈 없이 새로운 자극이 쏟아지는 세상. 이 자극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아 어제 새로웠던 것이 오늘 낡고 지루한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 모인 젊은 작가 5인은 시대를 두려워하기보다 외려 자신의 작업을 선보이는 무대로 적극 활용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주제나 소재를 깊게 탐구하는 것이 급변하는 이 시대를 사용하는 방법인 것처럼.
어릴 때 봤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떠오르는 보트의 그림, 알록달록한 털과 실로 엮은 러그와 생동감 넘치는 가구를 선보이는 서수현, 더 프리뷰 2023에서 욕조가 놓인 화장실 작품을 선보이며 주목받은 선리, 솜, 원단, 종이, 나무 등 소재의 한계 없이 위트 있는 입체 작품을 만드는 올로호요, 유리의 투명함을 이용한 아름다운 오브제를 창작하는 스튜디오 차차까지. 인스타그램 피드를 꽉 채운 이들의 재기발랄한 작업은 바삐 달리던 이 시대도 잠시 멈춰 흥미롭게 지켜볼 법하다.
studio Chacha
Q1. 당신이 예술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트 :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내가 그린 그림에는 즐거움, 욕망, 평정심과 두려움 등 변덕스러운 감정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인 나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수현 : 길을 걷다 발견한 작은 풀잎 등. 일상의 사소한 장면은 사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우울했던 기분을 단숨에 바꾸거나 고민하던 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내겐 이러한 순간을 담은 작품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선리 : 나는 회복과 완화에 관심이 많다. 이에 ‘목욕’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치유의 수단으로 정의하고, 목욕탕이나 사우나를 회복의 공간으로 표현하며 우리 생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를 말하고 있다.
올로호요 : 현대 사회 속 다양한 인간이 작업의 핵심이다. 작업을 통해 각기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에 더해 현대적 매체 및 기술을 활용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스튜디오 차차 : 소재를 탐구하며 발생하는 영감과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현재 유리를 주요 매체로 여러 기법을 적용하며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는 작업 중이다.
SUN LEE
Q2.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범주는?
보트 :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 재미있는 예시가 있다. 내가 처방받은 알약과 데미안 허스트의 알약(작품명 : Pharmacy)은 물질적으로 같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고찰하게 하는 데미안 허스트의 알약만이 예술로 인정받는다.
서수현 : 작품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하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상품이 된 물건이라도 창작자의 사상과 감정, 창의성이 담겼다면 그것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예술의 범주는 창작자의 의도와 더불어 관람자나 평가자의 감성과, 인식에 달린 게 아닐까.
선리 : 작가가 영감을 얻는 시점부터 작품을 제작 및 발표하고, 관람자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다양한 상호작용을 하는 모든 과정이 예술이라 생각한다.
올로호요 : 작가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것. 하지만 작가가 예술이라 주장하더라도 관람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예술이 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스튜디오 차차 :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모든 것. 누군가의 인정을 받아야만 예술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수현
Q3. 당신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특징은?
보트 : 물질적으로 풍족한 현시대 인류가 추구하는 것은 ‘FUN’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했다. 이때 느꼈던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내 작업에 캐릭터를 등장시키게 된 것 같다. 참고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톰과 제리', ‘짱구는 못말려(극장판)’다.
서수현 : 수많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무엇이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시대. 다양한 창작물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반면, 과도한 정보를 흡수하며 자칫 개성을 잃을 수도 있다. 때문에 나는 작업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믿음 아래 여타 이미지를 참고하지 않는다.
선리 : 많은 사람이 안정적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급변하고 치열한 현대 사회 속, 이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매사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러한 시대 속에 사는 사람들이 다각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유지할 방법을 작품에 담고자 한다.
올로호요 : 지리적 제약 없이 다양한 사람의 삶과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 이러한 변화가 작가들에게 새로운 상상과 영감의 뿌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차차 : 인스타그램 계정에 작업을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강렬한 기술이나 연출을 적용한 작업도 많이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물리적 제약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쏟아지는 작업 틈에서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쉽지만은 않다.
보트
Q4. 그렇다면 이 시대의 ‘예술가'란?
보트 : 온라인 채널이 발달함에 따라 작품 하나로 승부를 겨루기엔 어려운 시대다. 작가는 작업을 잘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부가적 매력을 드러내는 육각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
서수현 : 모든 이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 그렇기에 오히려 진정한 예술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
선리 :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예술가들이 관람자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시대다.
올로호요 : 온라인과 오프라인, 영리와 비영리의 구별 없이 미학을 표현하는 존재. 이에 더해 예술가는 단순한 창작을 넘어 현대 문화 및 기술의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튜디오 차차 : 앞서 말했듯 새로운 영감을 주는 모든 이가 예술가라 생각한다.
올로호요
Q5. 당신의 작업이 이 시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하나?
보트 : 예술사를 살펴보면 사진, 실크스크린 등의 매체 발명 시점이 기록되어 있다. 릴스를 자주 만드는 나 역시 시대 현상을 기록하는 역사의 일부다. 100년 뒤 내 릴스가 ‘쇼츠 예시1’로 등장할지 누가 알겠는가.
서수현 : 마음에 작은 요동을 일으키는 작업을 하고 싶다. 내가 어릴 때 그린 그림을 본 누군가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던 유년 시절의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외려 내가 큰 힘을 얻었다.
선리 : 내 작업을 본 관람자가 ‘사유하는 경험'을 가진다면 좋겠다. 내 작업을 본 관람자가 자신의 경험과 감상을 더 해 사유의 폭을 확장할 때, 그리고 그 순간을 작가인 나와 공유할 때 희열을 느낀다.
올로호요 : 예술은 복잡다단한 현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서로 다른 개인이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이자 도구였으면 한다.
스튜디오 차차 : 나는 기능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인, 즉 경계에 놓인 작업에 관심이 많다. 이는 나의 예술이 거창한 시대적 의미를 지니기보다 나의 만족과 호기심에 비롯하기 때문일 테다. 나의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상상력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한다 생각한다.
스튜디오 차차
Q6. 마지막.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예술가란?
보트 : 어렵다. 단계별로 설명하자면…첫 번째. 아무런 방해 없이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 두 번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영향력 있는 사람. 세 번째. 모두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
서수현 :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이야기가 영향력을 가진 사람.
선리 : 누군가 오랜 시간 마음속에 간직할 작품을 만드는 사람.
올로호요 : 탐구 정신을 잃지 않는 사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차세대에 영감을 주는 사람.
스튜디오 차차 :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사람. 서툴고 어색한 표현일지라도 꾸준히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로 서사를 완성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Editor : 신은별
